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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5 :: 회갑이 되면

50년대 후반에 태어난 우리세대는 태어나서 부모와 가족의 얼굴을 익히고 사물의 이름들을 익히면서부터 전쟁이라는 단어를 듣고 자랐습니다. 준 전시상태였던 시절에 군 생활을 하신 아버지와 삼촌들은 친구들과 모이기만 하면 두렵고도 힘들었던 군 시절 이야기를 하셨고 국민학교 수업시간에도 반공교육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의 놀이도 자연스레 전쟁놀이가 많았습니다. 대부분 학급에는 우등생도 반장도 아니면서도 리더십과 카리스마가 넘치는 대장(!)이 있었는데 그 대장을 중심으로 이쪽저쪽으로 편을 갈라 일이학년 저학년들은 학교 뒤에 있던 나지막한 산소를 사이에 두고 싸웠고 고학년들은 산비탈을 타고 다니며 싸웠습니다. 

치고받는 몸싸움이 아니라 몸을 숨기고 신호를 보내는, 진격을 하고 후퇴를 하는, 머리를 써서 작전을 짜고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그래서 고지를 점령하는 지금 생각하면 팀웍이 아주 중요한 놀이였습니다. 축축한 땅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리기도 하고 바위 뒤에 몸을 숨기도하고 나무를 타고 올라 상대의 동향을 살피기도 했습니다. 싸움에서 진 날이면 거친 숨소리를 내며 무엇 때문에 젔는지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다음날의 승리를 위하여...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나는 전쟁이라는 단어가 생소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잊고 살뿐...

   

5월 15일 울릉군민회관에서 남한권준장님의 안보특강이 있었습니다. 울릉도가 생기고 처음 장군이 되신 분이라 우리 군민의 자랑이기도 하거니와 편안하고 안락해 잊고 살았던 우리의 안보현실을 다시금 점검하게 하는 시간이었기에 무척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영상을 보며 힘없던 시절의 우리 역사를 보았고 민족의 비극인 6.25를 보았고 부모 잃은 고아를 보았고 남편과 자식 잃은 여인들을 보았고 상처 입은 이 강산을 보았습니다. 전쟁만큼이나 어려웠던 가난을 보았고 먹고 살기위해 해외로 나간 근로자들의 눈물을 보며 손수건을 돌려가며 울었습니다. 전쟁을 직접 경험한 어르신들의 한숨 소리도 들었습니다. 발전된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면서 대단한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느꼈고 천안함사태를 다시 보며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현실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닐 것입니다. 회관을 가득 메운 군민들 모두가 조국이 없다면 풍요롭고 자유로운 우리들의 삶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계기가 되었을 줄로 압니다.

울릉도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어렵고 바쁜 중에도 고향을 잊지 않고 찾아주신 남한권준장님께 존경을 표합니다.

강의를 들었던 모든 주민에게 따뜻한 국밥 한 그릇씩 먹고 가게 해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장군님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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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순
찡한 글입니다.
그리고
동공의 뻐근함을 느낌니다.
2012/05/21 16:13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2012/05/21 17:36

 

 

섬노루귀

 

 

제비꽃

 

 

봄꽃이 화사한 날 아침 딱따구리가 마른 나무둥치를 쪼아대는 소리가 골짜기를 휘돌아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아주 빠른 손놀림으로 작은 북을 두드리듯 더더덩대는 소리가 호박벌의 윙윙대는 날갯짓소리와 섬벚꽃을 흔들어대며 달려 내려오는 바람소리와 전깃줄을 널뛰기하듯 건너다니며 지저골대는 작은 새들의 수다와 어우러져 멋진 화음을 이룹니다. 썩어 문드러지고 진기가 빠져 말라비틀어지고 밀어버리면 쓰러져 버릴 형상을 한 빈 속만 남아있는 죽은 나무도 누군가가 눈여겨 보아주고 두드려주니 연주회의 주인공이 되어 당당하게 피어난다는 사실에 감동했습니다. 죽어서도 아름다운 그 나무의 노래 소리를 듣노라니 죽음 후의 내 모습도 아름답게 기억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해보게 됩니다.

 

어느 모임자리에서 한 회원분이 뜬금없이 자기 자신이 참 대단하다고 자랑을 하셨습니다 “며칠 전에 내가 회갑을 맞았거던요 너무너무 좋았어요 내가 육십을 넘겼다는 사실을 온 천지에 자랑하고 싶었는데 마음 놓고 자랑할 곳이 없습디다 요즘은 인생은 칠십부터라는 말을 넘어 구십구세까지 팔팔하게라는 말이 진심을 담고 농담처럼 회자되고 있는 세상인데 회갑을 맞이한 것이 뭐가 대단하다고 자랑을 하나 욕할 것 같아서..."육십이라는 말이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우신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시나 싶어 처다보았습니다.“난 결혼하고부터 쭉 죽음에 쫓기며 살았어요. 23살에 간디스토마가 걸렸어요. 9개월 안에 죽는다고 했어요. 지금은 별것도 아닌데 그때는 간디스토마가 불치병으로 취급 되었거던요. 그때 젖먹이가 있었는데 날마다 그 애가 자기 손으로 숟가락 잡고 밥 떠먹을 수 있을 때 까지 만이라도 살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요. 다행히 9개월이 지나고 일년이 지나고 자식을 두명이나 더 낳아도 죽지 않았어요 그렇게 하루하루를 아슬아슬하게 살았는데 53살 되던 해 갑상선암 판정을 받았어요. 갑상선암은 예후가 좋은 암이라 별것 아니라고들 하지만 그 과정을 이겨낸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어요 누구나 평생 살면서 아프지 않고 괴로움이 없이 살수는 없겠지만 난 좀 특별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이렇게 살아 태어난 해로 되돌아 와 회갑을 맞았다는 것이 너무 대견스러워 막 자랑하고 싶었어요. 생일날 아침 난 처음으로 나를 위해 제대로 된 생일상을 차렸습니다 소고기를 볶고 생선을 튀기고 잡채를 하고 나물을 무치고 맛있게 미역국을 끓이고 팥밥을 하고...그리고 맞은편에 앉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이때까지 나를 잘 보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내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이때까지 살아오느라고 고생 많았다 회갑 축하한다.”

눈시울을 붉히며 입가에 웃음을 달고 자기의 회갑을 자축하는 그분을 보면서 가슴 뭉클했습니다. 나 또한 펼쳐보면 제법 역사가 깊은 인생인데도 한 번도 나 자신에게 살아온다고 욕봤네 살아간다고 욕보네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 불쌍하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날이 되면 나도 그분처럼 나 자신에게 잘살아왔네 욕봤네 칭찬 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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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재촉하는 비가 시도 때도 없이 줄금 그렸다. 그 비가 눈이 되어 내리기도 해 산과들이 하얗게 표백되기도 했다. 밤새 골목을 휘돌아다니던 바람은  휘파람 소리를 내며 문틀을 흔들어댔다

속도가 멈추어 버린 듯하던 겨울, 그 끝에 찾아온 이 따스함은 계절의 시계 판에 태엽을 감은 듯 속도를 내게 하고 그 출발선에 서 있는 초봄은 잔설이 남아 있는 겨울의 추억을 껴안은 채 봄날의 따스함을 맞이하다보니 이리저리 비틀대며 곤두기침을 해 대며 사흘이 멀다하게 파도를 일으키며 육지와의 뱃길을 끊어 놓는 것 같다

하기야 춘분도 지나고 청명 한식이 열흘 안짝인데 바람도 바꿔 불어야 되고 햇볕도 바꿔 풀어야 되다보니 얼마나 바쁘겠나싶기는 하다. 벌서 몇 주 주말마다 이런 날들이 이어지다보니 쉬는 날이 되어도 어떻게 해 보겠다는 계획을 세울 수가 없었다. 오늘도 봄눈이 군무를 추는 하늘을 보며 고민만 하다가 ‘이 보다 더 험한 날도 떠나지 않았던가?’ 하는 결론과 함께 결단성과 적극성을 최대한 발휘해 성인봉을 향해 떠났다.

야산골짜기에도 아직 잔설이 남아 있기에 동행자도 없이 높은 산을 오른다는 것은 두려움과 걱정이 함께 하는 길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이 눈이 더 녹기 전 꼭 성인봉을 오르고 싶었던 것은 몇 주 전 몇 명의 사람들이 정상부근에서 설동을 파고 그 속에서 특별한 하룻밤을 보내고 왔다는 이야기에 그렁저렁 살아가는 활력 없는 마음에서 불일 듯 일어난 ‘그 느낌이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그들이 파 놓은 설동이라도 구경해 보았으면 해서였다

산 들머리에서 부산에서 왔다는 한 청년을 만났다. 혹시나 하는 염려로 스틱이며 아이젠 등 겨울장비를 한가득 메고 출발한 나와는 달리 배낭하나 달랑 메고 나선 그 모습이 너무 가벼워 보여 걱정이 되었다

‘위에는 아직 눈이 많을 텐데, 아이젠도 없이 미끄러울 텐데... 하기사 젊으니까 그것 하나만으로도 오르고도 남겠다’

나 혼자 걱정하고 나 혼자 결론을 내리며 출발하는 내 뒤로 그 청년이 따라왔다

지난밤에도 비를 뿌리고 바람이 불어대더니 이곳은 그것이 눈이 되어 휩쓸려 다녔는지 어둠이 내려앉은 밤 모양 ‘저 방향으로 길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천지분간이 되지 않는 막막한 모습이다.

물컹물컹 녹아내리던 눈이 시린 봄밤에 딱딱하게 굳고 그 위에 살포시 얹힌 새눈은 유연제가 섞인 듯 미끄러워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바빴다. 가풀막진 길을 한참 오르다 뒤돌아보니 다행히 청년은 눈 밟을 일이 별로 없는 곳에 사는 사람답지 않게 잘 따라오고 있었다.

정상이 900m라는 안내문구가 붙어 있는 지점을 지나서부터 얼음 꽃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오가 되어가면서부터 오르기 시작한 기온에 두둑두둑 떨어지는 얼음덩이들은 깨끗한 눈 위에 이리저리 DNA 연결고리 같은 흔적을 남겼다

다 떨어져 버리기 전에 빨리 올라가자는 욕심은 마음뿐이고 진기가 다 빠져 버린 듯한 몸은 수도자들의 경건한 걸음처럼 느릿느릿했다

그렇게 오른 성인봉은 방향에 따라 상고대와 눈꽃이 겹쳐 피어 치장을 하고 있었고 오락가락하는 구름사이로 내려 비취는 햇살은 무대에 조명을 넣듯 들락거리며 시린 손을 잊게 하며 포근함을 느끼게 했다. 그 순간 힘들고 괴로웠던 마음은 간곳없고 뇌 속에서 새 이성을 만나면 분비된다는 도파민만 분출된 듯 황홀함에 빠져 빙글빙글 웃었다.


말잔등 가는 능선 아래쪽으로 누군가의 발자국이 화살표처럼 나 있었다. 저 자국만 따라가면 설동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한참을 들어갔다

기대와는 달리 그 자국은 중간에 끊겨있었다. 그것이 설동으로 가는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르는데 난 그 발자국이 그곳으로 가는 것인 줄로 철석같이 믿었다

솔직히 그 발자국의 주인도 나처럼 설동을 찾아 들어간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궁금증을 아직도 떼칠 수가 없다.

결과적으로 설동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 발자국을 따라 들어가다 만난 풍경은 ‘우와 우와’ 소리를 연발하게 만들었다. 겨우 내 북쪽에서 넘어온 차갑고 강한 바람은 남쪽 바람과 만나 능선을 중심으로 눈을 쌓아 올렸고 상대적으로 약한 남쪽 바람은 북쪽으로 넘어가지 못해 속살을 갈아먹으며 휘돌아 나가다보니 북쪽 바람이 넘나드는 능선은 딱딱하게 굳어 지붕역할을 했고 남쪽으로 휘어진 부분 아래로는 속살이 달아나버려 마치 처마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따뜻해진 날씨로 인해 무너져 내린 곳이 많았지만 일정부분은 동굴을 가로로 잘라놓은 듯 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층층이 다져진 눈은 지리부도 책에 나오는 지층 같았고 들숙날숙 자잘하게 달려있는 고드름은 언젠가 다녀온 석회암 동굴 안에서 자라고 있던 종류석같았다. 특히나 눈이 없으면 발붙이기조차 힘든 비탈에 자라고 있는 나무마다 가지가 휘어지도록 수수송이 같은 눈뭉치들이 달려 있었다. 안개가 얼음 알갱이가 되어 박혀있는 그 눈 뭉치들은 바람에 지나갈 때 마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주인공처럼 반짝거렸다.


어느 책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가이드가 발길을 멈추는 곳에서부터 진짜 볼만한 것들이 시작 된다” 또한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라고

난 오늘 설동을 찾겠다는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누군가의 발자국을 따라 들어선 그곳에서 길가에서는 보지 못한 또 다른 아름다움에 취해 한참을 허우적댔다

그렇게 서성대다 떠나는 내 뒤로 연극 끝난 무대에 막이 내리듯 눈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거짓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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